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사벨 2세 (문단 편집) == 가족관계 == 1846년 10월 10일에 여왕의 친가쪽과 외가쪽 모두 사촌 관계가 되는[* 친사촌 겸 이종사촌. 이사벨의 아버지 [[페르난도 7세]]와 프란시스코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가 친형제 지간이였고, 이사벨의 어머니 [[마리아 크리스티나(양시칠리아)|마리아 크리스티나]]와 프란시스코의 어머니 루이사 카를로타도 자매지간이였다. 심지어 페르난도 7세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모두 자신의 '''외조카'''와 결혼해 이사벨과 프란시스코를 낳았다.] [[프란시스코 데 아시스|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]]와 결혼해 슬하에 12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유아 때 사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은 알폰소 12세를 포함한 1남 4녀 뿐이었다. [[파일:Francisco de Asís, Duque de Cádiz.jpg|wid=400&height=400]] [[프란시스코 데 아시스|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]](1822년 5월 13일 ~ 1902년 4월 17일) 여왕의 혼담이 오갈 때 각국 왕실에서는 저마다 배우자감을 추천해 국익을 도모하려 했는데, [[영국]]의 [[빅토리아 여왕]]은 남편인 [[앨버트 공]]의 출신 가문인 코부르크 가문의 사람을 내세웠고 [[프랑스]]의 [[루이필리프 1세]]는 자기 아들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[* 참고로 모계로는 5촌인데 부계로는 대략 14촌 관계다.]을 내세우며 서로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. 몽팡시에 공작 앙투안은 이사벨 2세와 같은 날에 이사벨의 동생 [[루이사 페르난다]]와 결혼했다. 즉 합동결혼. 결국 이사벨 2세는 정치적인 이유로 사촌인 프란시스코와 결혼했는데 정략결혼이었기 때문인지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고, 일각에서는 프란시스코가 성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. 그런데 이에 대해선 프란시스코도 왕위 계승권을 갖고 있어서 [[살리카법]]으로도 프란시스코와 이사벨의 남자 후손은 계승권을 갖게 되니,[* 프란시스코는 몰리나 백작 카를로스의 동생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의 실질적 장남이기 때문에(차남으로 태어났으나 형이 요절) 살리카법에 따라 왕위를 계승한다고 가정할 경우 계승 서열이 카를로스파 바로 다음 순서가 된다. 실제로 이에 따라 부르봉 왕조 직계가 단절된 후 카를로스계에게 넘어간 명목상의 프랑스 왕위는 카를로스계가 단절된 다음 이사벨 2세의 손자 알폰소 13세를 거쳐 그의 차남인 세고비아 공작 하이메에게 넘어갔다.] 일부러 이사벨 2세의 자식이 프란시스코의 자식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카를로스파가 일부러 프란시스코에게 문제가 있다는 소문을 의도적으로 조장했다는 말이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